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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는 여동생이 있는데, 무슨 얘기인가 하다가 낙태 이야기가 나왔는데 그 녀석이 이런 말을 했다.
"대한민국 여자 중에 50%가 낙태 경험이 있데." 난 그 말을 듣고 나서는 당분간 길거리에 지나가는 여자들을 보며 '저 여자는 했을까? 안 했을까?' 이런 생각에 시달려야 했다. 쇼크. 그 녀석에게 들은 말을 표현할수 있는 아주 적절한 단어이다. 여자가 sex 문제에 있어서 결코 끝까지 cool 해질수 없는 이유 중 가장 큰 것, 미혼남녀의 즐떡에 가장 큰 걸림돌이 되는 것이 바로 임신 문제이다. 야한 얘기나 하지 갑자기 임신 얘기냐 할텐데, 어떻게 맨날 떡치냐 좀 쉬는 날도 있어야지. 그리고 내 블로그 통계를 보니 방문자수는 점점 늘어가고, 게다가 남자가 방문객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고 있어서 이쯤에서 한번 사이렌 울리고 가는게 좋을것 같아서이다. 알다시피 임신은 피임하지 않아서 일어나는 현상이다. 콘돔 미착용 등등으로 임신이 이루어진다. 날짜 계산 잘못한 20대 여성, 가족계획이 어긋난 주부 등등 많은 여성들이 여러가지 이유로 낙태수술을 받으려 산부인과를 찾는다. ───────────────────────────────────────── 그리고 지금부터 담패설이 할 이야기는 임신과 낙태 과정, 그리고 그 후에 관한 이야기다. ───────────────────────────────────────── 2001년 3월. 만 19세. 여성. 임신 4개월. 생리불순이란 일종의 '병'을 앓고 있던 그녀에게 생리 두세달 하지 않는건 일도 아니었다. 병약한 몸. 남들보다 늦은 나이에 시작한 생리. 생리불순은 예정된 것이었다. 2001년 2월 말. 그녀는 아랫배가 불러온단 사실을 알았다. 남자친구에게 임신한것 같노라고 넌지시 운을 띄워도 그녀의 남자친구는 계속 섹스만을 갈구했다. 그러던 어느 날, 남자친구와의 섹스 도중 확실히 알게 됐다. 이 안에 아이가 들어있다는 것을. 삽입시 태아가 도망치려는듯 위로 올라오는 그 느낌이 생생했다. 3월. 그녀는 병원으로 향했다. 동네 조그만 병원이었다. '야메' 라 부르는게 적당한 산부인과였다. 공포영화에서 많이 본듯한 기구들과 다리를 벌리고 눕는 침대의 그로테스크한 분위기에 그녀는 덜컥 겁부터 났다. 게다가 의사는 할머니였다. 생리가 끊긴 날짜를 듣더니 할머니가 입을 연다. "초음파 검사부터 해보자." 그녀는 침대에 누웠다. 배에 차가운 젤을 바른다. 남자친구가 체외사정 했을때가 떠오른다. 할머니는 바코드 찍는 것처럼 생긴 물건을 그녀의 배에 대고 문지르고 모니터를 보더니 건조한 목소리로 말한다. "4개월 정도 됐겠는데." 그녀도 모니터를 바라본다. 검은 바탕에 흰 점들의 무리가 왔다갔다 한다. "어떻게 봐야 하는거죠? 전 모르겠는데." 그 질문은 임신을 믿고 싶지 않은 최소한의 발악이었을지도 모른다. 할머니는 친절하게도 손가락으로 일일이 가리키며 설명해준다. "여기가 팔, 여기가 다리, 여기가 머리." 침대 위에서 그녀는 목놓아 울었다. 머리, 팔, 다리가 다 있다. 사람이다. 내 안에 아이가 있다. "개월수가 4개월이나 되서 우리 병원에서는 위험해서 할수가 없고 .. 그리고 원래 시술하면 안되는 개월수야. 위험하고, 나중에 후유증 위험도 있고해서 .. 내가 다른 병원 소개시켜줄테니까 여기로 가봐." 3월 7일. 남자친구와 함께 그 병원을 찾은 그녀는 유유상종이란 말을 떠올린다. 야메 친구는 야메다. 병원 넓이와 간호사 명수에만 차이가 있을뿐. 접수를 한다. "이름은요? 나이는요? 몇개월인가요? 낙태 경험 있나요?" 이 네가지가 질문의 다였던 것으로 그녀는 기억한다. 접수를 하고 기다린다. 다른 여자들도 나와 비슷한 이유로 이 곳을 찾아왔겠지만 그래도 그녀는 다른 이들의 시선이 낯설고, 두렵다. 지난번 그 곳에서 봤던 다리 벌리고 눕는 침대에 눕게 되었다. 역시 이 쪽도 할머니다. 둘이 친구인가보다. 유유상종. "응 학생, 내가 지금부터 뭘 할거냐면. 자궁에 약을 넣을꺼야. 왜 약을 넣냐 하면, 지금 학생이 개월수가 너무 높아서 애기를 그냥 꺼낼수가 없거든? 그러니까, 자궁을 억지로 넓혀서 애기를 꺼내야 되거든. 조금 아플꺼야." .. 많이 아팠다. 이상한 기구를 질 속에 넣는다. 손잡이를 돌린다. 기구가 벌어지면서 억지로 질구를 연다. 골반뼈가 벌어지다 뿌러질것 같은 느낌이다. 생살에 맨 기구를 넣고 벌려제끼니 살도 아프다. 약이 흘러들어온다. 차갑다. 차가운 약이 들어온다. "이것도 자궁 넓히는 약인데요, 내일 아침 9시까지 병원 오셔야 되거든요? 오늘 저녁 9시부터 내일 아침 9시까지 아무것도 드시면 안되요. 이 약을 병원 오기 전에 드시고 오세요. 물도 약을 먹을수 있을만큼의 최소한의 물만 드셔야 돼요. 잊지 마세요, 내일 9시까지에요." 그 날 저녁, 남자친구가 사준 삼겹살을 먹고 그녀는 남자친구와 헤어졌다. 아침 8시 반에 만나서 같이 가자는 약속을 하고. 2001년 3월 8일 8:30 am. 그녀는 어제 밤에 배가 아파서 잠들기가 힘들었다. 배가 이대로 계속 늘어다가 찢어질것 같은 고통이었다. 배를 부여잡고 끙끙대다 새벽에나 지쳐 잠들었다. 일어나자마자 약을 먹었다. 남자친구의 전화번호를 눌렀다. 전화를 받지 않는다. 집으로 전화했다. 그의 어머니가 받는다. "응, 웬일이니 아침부터?" "아, 제가 어디가 좀 아파서 같이 병원가기로 약속했는데 .. □□는 뭐해요?" "그래? 자는데?" 잔댄다. 그녀는 전화를 끊었다. 그의 어머니가 걱정이 됐는지 다시 전화를 걸어온다. 많이 아프면 자기가 대신 같이 가주겠단다. 같이 가서 이 새끼(남자친구) 병신 만들어버릴까 하는 생각도 든다. "아니에요, 혼자 갈수 있어요." 전화를 받고 있는 다른 한 손으로는 남자친구에게 문자를 보낸다. 2001년 3월 8일 8:50 am. 이러다 배가 찢어져서 그 안에서 아이가 흘러나오지 않을까 싶다. 씻지도 못하고 옷도 못 갈아입은채 파자마 바람으로 코트만 걸친채 그녀는 밖으로 나가서 택시를 잡았다. "아저씨, 동부시장이요." 택시는 야속하게도 병원 건너편에 내린다. 병원까지는 육교 하나를 사이에 두고 있다. 한손으로는 계단 난간을 잡고, 한 손으로는 배를 움켜쥔채 힘겹게 계단 하나하나를 오른다. 지나가는 젊은 남자들이 그녀를 이상하다는 눈빛으로 쳐다보고 지나간다. 간신히 육교 위까지 올라왔다. 그 순간조차 그녀는 병원 앞에서 쓰러지면 어떻게 될까 하는 어이없는 생각이 났다. 그 육교는, 그녀가 건넌 육교중 가장 길었던 것으로 기억된다. 간호사의 인도를 받아 입원실로 들어간다. 입원실이라고 해봐야 널찍한 온돌방에 이부자리를 몇개 펴놓은것 뿐이라 입원실이라 하기엔 옹색하다. 그녀 말고도 일찍 온 여자들이 몇명 누워서 링겔을 맞고 있다. 그녀들의 한 손엔 링거주사바늘이, 한 손엔 그녀들의 남자친구, 혹은 남편의 손이 각각 자리하고 있었다. 그녀의 양 팔에는 링겔 한병씩이 제공되었다. 4개월이란 개월수탓이었다. 감상에 빠지기엔, 배가 너무 아팠다. 3월 8일 12:00 pm. 남자친구에게 계속 전화를 건다. 받지 않는다. 간호사는 계속 간호인이 없느냐고 물어온다. 하는 수 없이 아는 여동생에게 전화를 건다. 아마도 그 여동생은 미래에 '대한민국 여자 중에 50%가 낙태 경험이 있데.' 라고 말할지도 모른다. "도대체 어떻게 된거야 이게? 왜 이러고 있어?" "보면 모르냐 .. " "남자친구는?" "안 받어 .. 팔에 힘이 없다. 네가 대신 전화 좀 계속 해다고 .. " "밥은 먹었어?" "아무것도 먹으면 안돼 .. " 그녀는 이 꼬라지가 보이기 싫어서 여동생에게 전화하기 싫었던 것이다. 4:00 pm. "계속 안 받어. 게다가 언니 핸드폰 밧데리도 다 됐어. 내껄로 계속 전화하고는 있거든?" "하지마라 .. 됐어 .. " "□□□님 이제 수술해야 되거든요?" 링겔을 달고 수술실로 들어간다. 수술실 역시 옹색하기 짝이 없다. 아기가 아니라 내가 죽는게 아닐까 그녀는 생각한다. 다리를 벌리고 눕는다. 간호사들과 의사가 분주히 왔다갔다 한다. 어느 곳에 시선둘만큼의 힘도 남지 않았다. 그저 입을 벌리고 멍하니 누워만 있는다. "어지러울수 있거든요? 제가 묻는 말에 대답해주세요." "예 .. " "어지러우세요?" "아니오 .. " "어지러우세요?" "아니오 .. " "어지러우세요?" " ....... !!!!" 6:00 pm. 그녀는 정신이 돌아왔다. 헌데 앞이 보이지 않았다. 머릿속에선 빨간 망토를 두른 마사루와 이자와, 마에노가 총천연색 배경화면을 날아다니고 있었다. 그녀는 생각했다. 내가 살아있는건가? 아니면 죽은건가? 죽으면 이렇게 되는건가? 아니면 뭔가 잘못된건가? 여긴 어디지? 사람의 소리가 미약하게나마 들리기 시작했다. 그녀는 필사적으로 소리쳤(지만 목소리가 크게 나오진 않았다)다. "아무도 없어요 .. ?" 무슨 소리가 들리긴 하는데 뭐라고 말하는지 모르겠다. 그녀는 다시 소리쳤다. "거기 누구 없어요 .. ?" 그제서야 '여기 있어요, 괜찮아요.' 라고 말하는 소리가 들렸지만 공황상태에 빠진 그녀는 아랑곳없이 소리쳤다. "살려주세요 .. !" 간호사, 의사들이 그녀의 주변으로 달려왔고, 그제서야 그녀는 눈이 떠졌다. 아직 병원이었다. 그녀는 수술 시작했을때와 마찬가지로 다리를 벌리고 누워있었으며, 잘못된것도 없어 보였다. 의사가 그녀의 볼을 도닥이며 말했다. "아직 마취가 덜 깨서 그래요. 더 누워있어요." "언니 아까 여기서 들으니까 막 헛소리 하더라. 살려달라 그러고, 누구 없냐 그러고." " ……." "근데 다른 여자들은 30분만에 수술 끝내고 나오던데 언니는 2시간이나 걸렸네. 마취깨는데 한시간 반 걸렸다는거 아냐?" 수술이 끝나고도 그녀는 입원실에 누워있었다. 간호사가 스테인레스 그릇을 가지고 와서 그녀의 머리맡에 아무 말 없이 놓고 갔다. 그리고 5분 뒤, 그녀는 그 그릇의 용도를 알수 있었다. 위액을 토한 것이다. "아니 왜 빈혈있는걸 말씀을 안 해주셨어요. 큰일날뻔 했어요. 죽을뻔 했다구요." "예…." "이거 약이에요, 매일 드시구요. 하혈하실꺼니까 이거 착용하고 가세요." "……." 그녀가 받은 것은 줄줄이 비엔나같은 약봉지들과 아이용 기저귀였다. 7:00 pm. 그녀는 집으로 돌아왔다. 올때 동생이 손에 들려준 전복죽을 가지고 와서 죽지 못해 산다는 심정으로 먹었다. 남자친구에게 다시 전화했다. 받았는데, 아무 말이 없다. "…뭐했어?" "…잤어." "…언제 깼는데?" "아까 낮에." "…근데 왜 안 왔어?" "…무서워서." 그 뒤로 한달 동안을 그녀는 치료를 위해 병원에 다녔다. 그녀는 TV를 볼수 없었다. 뉴스에서는 살인이야기가 나오고, 쇼프로에서는 아기가 나왔다. 온 세상이 그녀를 손가락질하고 있는 느낌이었다. 죄책감을 덜고자 용기내서 이야기한 친구는 그녀에게 살인자란 말을 되돌려주었다. 그녀는 벽을 마주한채 세상을 등지고 돌아앉았다. 그 해 봄은, 그녀에겐 겨울보다 추운 계절이었다. ───────────────────────────────────────── 뭐 이런 글을 쓴 것은, 그러니까 '저 여자 졸라 불쌍하지 않느냐.' 가 아니라. '낙태란 저런 것이다.' 를 이야기하고 싶은거다. 이런 얘기, 담패설 아니면 또 누가 하겠는가. 판단은 어디까지나 읽는자의 몫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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